10월 3일

'희년과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평화를 선포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한 "주님, 저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는 기도를 남겼으며, 그 기도대로 살았다. 그는 이미 주어진 부유한 생활을 벗어던지고 가난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었고, 복음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관대함으로 단순한 삶을 살았다. 이 단순함으로 그는 창조계의 모든 선함에 대하여 지극한 기쁨으로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불러드릴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들에 핀 한 송이 백합화였다.
   가난과 단순함의 프란치스코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이 맑은 가을에 '벗어버림'의 영성을 연습할 수 있어야 하겠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은총의 순간이 희년의 시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느님,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풍성히 축복을 내려주셨나이다. 저희가 이 선물들을 관대하고 기쁘게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 그들도 희년의 기쁜 소식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소서. 아멘.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10월 10일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서기

   교황님께서는 [제삼천년기]에 세속주의의 도전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교황께서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표현하신 이 세속주의란 종교를 배제하고 인간 홀로 충분하다고 믿는 철학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일들과 하느님은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한다. 세속주의를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진리가 변한다. 즉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 진리가 변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무의미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며 문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세속주의는 영원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므로 현재를 즐겁게, 만족을 주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세속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능력과 정의와 평화,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한 노력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바로 이러한 노력들을 교황께서는 강조하신 것이다. "이 문명의 위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평화, 연대, 정의, 자유의 보편 가치들에 기초하는 사랑의 문명으로 대치되어야 합니다."(제삼천년기 52항). 정녕코 우리 문화가 이 '사랑의 문명'으로 대치될 때 우리보다 더 불행한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우리 인식을 넓힐 수 있는 시야, 곧 세속주의에 도전하는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10월 17일

희년, 나의 신원을 찾아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이 되면 자기 지파를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되돌아가도록 하였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교황께서는 [제삼천년기]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양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분과 무관하게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느님을 잊음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에게서 난 존재라는 신원,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목적도 잃어버리며, 동시에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삶의 방식도 잃어버리게 된다. 곧 진정한 자신의 소유지, 자신의 지파를 떠나 방황과 어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대희년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나는 참으로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아침 바치는 "하느님, 저를 사랑으로 내시고 저에게 영혼과 육신을 주시어 다만 주님을 위하고 사람을 도우라 하셨나이다"라는 기도가 "내가 돌아가야 할 지파, 내 소유지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10월 24일

희년과 정결한 삶

   인류 역사에서 속박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맞서 해방운동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과거의 해방운동들은 주로 국가와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국면에서 인간이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때도 드물었던 것 같다. 세계적으로 각계 각층 남녀노소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어떤 형태의 억압에서든지 자유롭게 해방되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들대로, 아이들대로, 가난한 이들대로, 약한 자들대로, 그리고 남성들대로…
  오늘날의 이러한 현상은 사실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억압과 속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다. 투쟁을 통해 여러 면에서 실제적인 해방을 가져왔지만 대부분이 구조와 힘이라는 외적인 억압과 속박에서의 자유와 해방에 국한되고 있다. 우리는 쾌락주의·물질주의·세속주의에 순결한 영혼, 정결한 삶을 빼앗기고 있다.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각자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결한 삶의 징표가 되라는 부르심을 이 시대로부터 받고 있다. 물질과 쾌락과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을 향해 정결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10월 31일

희년과 순명

  보다 더 끔찍이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나뿐 아니라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 모든 사건들, 온 우주를 환히 꿰뚫어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실 만큼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사랑 안에서 돌보시며 완성으로 이끄신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좁은 한계를 지닌 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무한의 사랑과 지혜로써 구원경륜(救援經綸)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가? 나의 선택에 따라 진정한 행복의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순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하자.
하느님께 대한 순명 안에서 잉태되어 나시고, 순명 안에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 강생 2000년을 기다리며, 자기 뜻만을 고집하는 이 세대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명의 빛을 밝혀야겠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