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기쁨과 은총의 대축제, 2000년 대희년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남겨 주고자 하셨던 기도다. 우리가 자주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데(마태 6,9-13), 위대한 산상설교(마태 5-7장) 안에 들어있다. 주님의 기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전체 문맥에 주의를 기울이고 본문을 살펴보아야 하며, 거기에 함축된 뜻과 마태오 복음의 다른 부분에서 펼쳐지는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주님의 기도가 산상설교 안에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산상설교는 완벽한 그리스도인의 실천강령이다. 이 실천강령은 첫 대목에 나오는 행복 선언에 토대를 두고 있다(마태 5,3-11). 행복 선언은 인간의 근본적인 선택과 인간생활의 여러 양상에 대한 예수님의 가치를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마태 6,6)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녀와의 친밀감 있는 대화, 그리스도인과 하느님 사이의 대화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아버지와 갖는 친밀한 관계는 본질적이며 문제의 핵심에 바로 가 닿는다. 주님의 기도가 바로 이 특수한 맥락 속에 놓여있으면, 이 기도는 인간의 마음을 떠나 하느님의 마음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성숙한 관계를 이루는 특징이 바로 본질성과 심원성, 개방성인데, 이는 언제나 개념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6월13일

기쁨과 은총의 대축제, 2000년 대희년

주님의 기도의 "우리 아버지"라는 말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적 차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단순히 하나의 사회집단으로가 아니라 매우 친밀하게 그들을 결합시켜 주는 힘에 의해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한눈에 보시는 아버지이시다.
  지상의 체험으로 아버지의 범주 안에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하느님께서는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신적 초월성이 신적 부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부성으로 신성을 증대시키시고, 신성으로 부성을 증대
시키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존재이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에 이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하늘'은 하느님 고유의 차원을 상징하며 하느님의 실재를 강조하는 말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6월20일

기쁨과 은총의 대축제, 2000년 대희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첫째 청원은 하느님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곧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원하는 것이다. 이름은 그 사람의 배경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원하면서, 하느님 자신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거룩하게 하다'(神聖化)는 말은 곧 하느님께만 해당된다.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그 해답의 확실한 토대를 얻을 수 있다. "너희는 내 이름을 뭇 민족에게 멸시받게 했지만 나는 나의 위대한 이름을 거룩하게 하겠다. 뭇 민족이 보는 앞에서 너희 안에 내 거룩하게 되면, 그들은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에제 36,23). 마태오 복음서와 구약성서 전체를 밀접하게 이어
주는 이 대목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화는 실제적인 것이며, 이 구절에서 처음은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이름을 가리키고 그 다음은 하느님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거룩함과 신성에 대해 폭넓은 참여를 함으로써 겨레에게도 거룩함이 주어진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하느님의 거룩하심이 실현되어 그리스도교 가족 안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6월27일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에 이어지는 청원은 하느님의 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에 관한 청원이다. 이 표현을 이해하려면 구약성서에도 자주 나오며 신약성서에 집중되어 있는 '나라'라는 말을 살펴보아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그 '나라'는 모든 설계에, 모든 인간과 만물에 더욱 깊이 스며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내포한다. 그 나라에는 또 그리스도의 길을 통하여 우리와 화해하시고 더욱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 이러한 움직임의 마지막이 종말의 목표가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상기시켜 주듯이, 거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1고린 15,28 참조)이 되실 것이다. 이러한 최종 단계에서 나타나는 나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엄밀히 종말론적인 미래에 속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기
도문으로 돌아가자. 그리스도인이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하고 청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발전의 선취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의 생활에서, 그 구조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풍요로우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청원은 하느님과 인간에게 모두 관련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리스도 현존의 신적 은총을 통하여 인간과 어우러지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