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기쁨과 은총의 대축제, 2000년 대희년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는 것과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아버지께 드리는 또 다른 청원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객관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하시려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이는 특히 계명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 성령께서 해석해주시는 그 말씀에서 나오는 모든 가르침이다. 더 나아가, 창조주 하느님께서 역사의 움직임을 주관하실 뿐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신다고 하면,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메시지는 개인의 역사 안에도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렇게 드러난 매우 광범위한 뜻을 모두 실천하겠다는 순응성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이상이다. 인간의 차원에서 출발하는 그 실천은 바로 하느님의 영역에 이를 것이며, 인간 자신의 차원인 지상에 하느님의 영역인 하늘만의 완전성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그 실현은 최고 차원의 초월적 완전성, 하느님의 그 무엇, 하늘과 맺는 관계로 들어 높여질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7월11일

기쁨과 은총의 대축제, 2000년 대희년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청원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전형적인 기도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녀들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주는 일은 바로 아버지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에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 자녀들의 삶이 나날이 발전하도록 돌보고 계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계속하여 자녀들을 보살펴주신다. 이런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자녀들은 지상에 보화를 쌓아두려 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계산에 사로잡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비하고자 재물을 비축하지도 않는다. 아버지께서 결코 이르거나 너무 늦지 않게 제때에 보살펴주시고 사랑하시고 이끄시고 지켜주시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날 그날을 살아갈 수 있다.
  나아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함으로써, '나'의 것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청하고 있다. 곧 모든 이의 양식이며 모든 이에게 돌아갈 양식, 서로서로를 위한 양식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한 자녀들인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7월18일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는 구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속죄하여야 할 '죄'를 저질렀고 갚아야 할 '빚'을 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것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손상시키거나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은 언제나 인간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직접 손상을 입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손상' 과정은 하느님을 드러내주는 계약과 계명과 율법이 문제가 될 때에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과 자신을 갈라놓는 허방을 메워주고 하느님께 진 '빚을 갚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리
스도인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틈을 메워주고 빚을 갚아줄 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가족'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려면,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기 형제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즉 남이 자기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남에게 해주며, 받기로 계약한 '빚'을 탕감해주고, 일그러진 관계의 모든 잘못을 치유하고 회복해야 한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분명히 들어주실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7월18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유혹에 대한 성서의 개념은 특별하다.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본래 지니고 있던 가치들이 압력을 받게 되면 유혹이 일어난다. 이 압력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것일 수도 있고, 순간적이거나 지속적인 것일 수도 있다. 광야의 유혹은 사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광야생활 동안 하느님께서 제안하시고 백성이 받아들인 계약의 가치들은 여러 가지 압력을 받게 되었다. 광야에서 백성은 여러 차례 하느님을 '유혹'하려고, 하느님을 시험하려고 하였다(출애 17,7; 신명 6,16; 9,22; 시편 95,9 참조). 이는 자신들을 돌봐주는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전적인 신뢰와 의탁에 어긋나는 태도였다. 그것은 효심의 결여이고 신뢰의 부족이며, 인간의 차원에서 인간을 진정시킬 수 있는 어떤 보장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마에게 이로울지도 모르는 약점들이 자기에게 있으며, 또 모든 약점들을 다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하느님 자녀들의 근본적인 평온에 충격을 주어서는 안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역사 안에서 처음부터 악을 이기
셨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악을 쳐부수셨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공포는 물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위험까지도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나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이며 잘못에 떨어질 수 있고 또 이러한 결과가 악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아,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들마저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좁은 쳇바퀴를 용감하게 벗어나, 아버지의 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린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