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햇볕 따가운 팔월에는

  대희년 준비 마지막 해인 올 성부의 해에 우리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돌아가고자 대희년의 기도로 "은총의 때인 이 희년에 저희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소서. 아버지께서는 넘치는 사랑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자녀들을 기다리시며 그들을 용서하시고 따뜻하게 맞아들이시어 좋은 옷을 입히시고 잔치를 베풀어주나이다." 하며 기도해 왔다. 넘치는 사랑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 자녀들을 기다리시며 그들을 용서하시고 따뜻하게 맞아들이시어 좋은 옷을 입히시고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은 시간들인 것이다.
  방랑과 방황과 순례는 차이가 있다. 외적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방랑이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헤매는 내외적 상태가 방황이다. 그러나 순례는 뚜렷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 인생 길 어디쯤 서있는 것일까? 내 인생 여정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과연 방황을 하고 있는가, 방랑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가? 교회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성부의 해를 지내면서 우리에게 방황과 방랑을 끝내고 아버지의 집으로 발길을 돌리라고 호소하고 있다. 결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밤낮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시며 따뜻하게 맞아들이실 준비가 되어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발길을 돌리자.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8월 8일

정의를 향해 마음을 열라 1

  대희년 준비의 마지막 해인 이 '사랑의 해'에 우리는 희년을 맞이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소명을 사랑, 정의, 그리고 평화에 둔다.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키신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마태 11,5; 루가 7,22 참조) 오셨음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어찌 더 큰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그토록 수많은 갈등과 참을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세계에서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은 희년의 준비와 경축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정신(25, 8-12 참조)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를 위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제삼천년기 51항).
  교황 성화의 이 말씀은 세 가지 요소에 초첨을 두고 있다.
1.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대한 더 큰 강조
2.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
3.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높임
  처음 두 가지는 우리가 '희년의 사람'으로 양성되어야 함과 우리 자신이 '가서 희년이 되도록' 준비시켜야 함을 말한다. 세 번째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 곧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동반자로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일에 대하여 아야기하고 있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8월 15일

정의를 향해 마음을 열라 2

  본당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본당의 사목에서 고통받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가톨릭 신앙 공동체는 자신들의 기도와 교육과 활동을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권리를 위하여 가정의 안팎에서 어떻게 봉사하고 있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본당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 희년 준비의 마지막 해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이 은혜로운 시간을 알차게 지낸다면, 우리 본당의 사회 정의 사목은 다시 활기를 띨 수 있게 될 것이며, 더 큰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천년기를 향해 모든 문들을 활짝 열게 될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8월 22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미국 어느 교구의 주교님께서는 97일 동안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이 모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또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본당과 교구에서 개최하는 모임을 시작하도록 권고하셨다. 그 교구의 교우들은 모든 모임 때마다 이 질문을 되뇌면서,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질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 이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무관심이 분명히 드러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 가치관의 우선 순위가 바뀌게 했다. 그 기간이 끝난 다음 주교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제 우리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보통 모임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찾는 것을 뜻한다면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만큼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로 '정상'입니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8월 29일

희년에는 사회교리를 배웁시다

 '사회교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온전히 들어 있는 사회적 가르침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사랑을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몸소 실천하셨으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다. 주님의 이 가르침에 따라 교회는 사도 공동체로부터 자비를 실천하여 왔다. 세세대대로 이어오는 이러한 신앙 실천에서 발전된 가르침이 바로 사회교리이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우리를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실천하는 사람으로 키워준다.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에 대한 사회교리에 대하여 새롭게 관심을 가지며 공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성가대는 '정의와 평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가를 배워 부를 수 있고, 본당에서 교우들을 대상으로 정의와 평화에 관한 강연을 마련할 수도 있다. 또한 반모임이나 소공동체 모임, 기타의 크고 작은 모임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에 초점을 둔 신앙체험들을 하게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성찰하고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