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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수스의 사울이 초기 기독교 사도인 바오로로 개심하는 주제를 대부분 사도행전에 기초하여 보여주고 있는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가 멘델스존의 작품 중 그의 생존 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다고 주장해도 과언은 아니다. 1834년에서 1836년 사이에 작곡되었고 1836년 5월 22일(오순절)에 뒤셀도르프에서 초연된 이 오라토리오는 음악사의 흐름 안에서 거의 필적할 작품이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갈채를 받았다. 1837년 영국 버밍햄 음악축제에서 멘델스존이 지휘했을 때에 이 작품은 헨델의 불멸의 오라토리오들과 비견되는 호평을 받았고 그 후로 곧 이어서 수많은 연주가 독일,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행해졌다. 1839년에 멘델스존이 성 바오로를 브룬스윅에서 지휘했을 때, H. A. Chorley콜리는 “현대 음악 가운데서 ‘성 바오로’보다 더 많이 계속 들려지는 음악은 거의 없다”고 격찬했다. 그러나 이어서 같은 세기 안에 뚜렷하게 부정적인 평가도 일어났다. 1843년 성지주일에 바그너는 멘델스존이 지휘하는 것을 듣고 고전적인 거장의 작품이라고 찬양하긴 했어도 나중에 그의 저서 안에서는 악의에 찬 인종차별을 도입하여 유명한 유대인 가문의 일원인 멘델스존이 그의 성 음악 안에서 바흐의 심오함을 모방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리고 1889년에 George Bernard Shaw조지 버나드 쇼는 멘델스존이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로 자부하는 것에 반발하여 “despicable oratorio mongering비열한 오라토리오 행상인”이며 성 바오로의 “지루한” 푸가들이라고 깎아내렸다. 이렇듯 진자의 운동이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움직였다.

  멘델스존(1809-1847)이 오라토리오를 초연 하였을 때 겨우 27세이긴 했으나,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시 Robert Schumann로버트 슈만의 표현으로는 Philistinism속물주의로 불렸던 상업주의의 공격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음악의 가치들을 보호하고 새로이 재생시키는 작곡가로 여겨졌다. 음악의 기준을 보호하고자 했던 멘델스존의 역할은 영국의 초기빅토리아시대의 보수주의와 나폴레옹 몰락후의 독일의 재건시기와 잘 맞았다. 영국에서는 성 바오로가 헨델의 유익한 오라토리오들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독일에서는 1829년에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의 재발견함으로써 현대의 바흐의 재발견의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던지라, 성 바오로가 바흐의 고도로 화려하고 복합적인 성음악의, 현대에 적합한 옷을 입힌, 부활로 여겨졌다. 거의 한 세기동안 성 바오로는 성장하는 오라토리오계의 레퍼토리의 표준이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성 바오로는 레치타티브들과 아리아들과 합창들의 아주 잘 계산된 혼합이다. 주된 역할은 바흐의 수난곡들로부터 물려받은 형태인, 해설자에 의한 레치타티브들 인데, 이 곡에서는 소프라노와 테너로 나뉘어 있다(레치타티브 안에는 알토독창과 베이스독창의 짧은 등장도 있음). 아리아들은 전형적인 순환 3부분형식(ABA')이며 고립되어 있는 편이고 그 톤은 명상적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합창들의 다양성이다. 때로는 합창이 능동적으로 행위를 이끄는 데에 관여하는데(예를 들면 5,6,8,28,29,38번), 이는 바흐의 수난곡 안에서 turba(군중)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몇몇 합창들은 고도로 대위법적인 푸가로 되어있는데 - 그중에는 두 주제로 이루어진 이중 푸가(22번)와 확대된 오성 푸가(23번)가 있다. 다섯 개의 코랄들도 다양한데, 작곡가의 친구인 Karl Klingemann에 의하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 시키며, “개인적인 사건들로부터 일반적인 법칙을 가리켜 보여주고 전체를 통하여 고요함을 확산시키는 휴식 지점들”처럼 보인다. 이 과정은 3번과 9번(“Allein Gott in der Höh sei Ehr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에게만 영광”과 “Dir, Herr, dir will ich mich ergeben 주님, 저를, 당신께 맡기나이다”)의 단순하고 꾸밈없는 화성체로부터, 16번과 29번(금관 팡파레와 함께하는“Wachet auf깨어나라”와 관과 현의 아름다운 합주를 동반한 “O Jesu Christe, wahres Licht주 그리스도 참된 빛이여”)의 오케스트라 간주의 풍부한 사용에 걸쳐 일어난다.  36번은 그 코랄 작법의 복잡함에 있어서 독자적인 코랄로서 루터교회의 찬가인 “Wir glauben all' an einen Gott 우리는 모두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사도 바오로의 믿음으로 정의로워진다는 교리를 위하여 멘델스존이 직접 선택함)가 소위 코랄 푸가라는 푸가형식 안에 짜여있다.

  오라토리오 첫 머리에 오케스트라의 전주가 전 작품의 요약처럼 바오로의 영적인 신앙이 깨어나는 것을 예고한다. 낮은 현과 클라리넷들의 음색으로 우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1731년에 그의 유명한 코랄 칸타타(BWV 140)를 작곡하였던 코랄 “Wachet auf 깨어나라”의 엄숙한 선율을 먼저 듣는다. 선율의 상승곡선은 단조로 변한 주제로 바뀌면서 점점 더 빠른 템포로 펼쳐지는데 이는 이론적인 푸가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바오로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 1부의 첫 부분은 스테파노의 순교를 다루는데 먼저 빛나는 기악 반주가 붙은 합창과 간단한 코랄이 짝을 이룬다(2-3번).

  스테파노에 대한 거짓 증인들의 증언은 베이스 독창자들이 서로 정확한 모방을 이루는 캐논 형식으로 되어 있다(4번 “Wir haben ihn gehört 우리가 들었습니다”)(바흐의 마테 수난곡 39번과 비교해보라).
  점점 커지는 합창의 형식으로 군중들의 역할이 5번, 6번, 8번에서 나타난다.
  이 감정폭발들 중의 두 번째는 스테파노의 힘찬 레치타티브에 이어서 나타나는데(6번), 이는 멘델스존에 의해서 처음엔 고요하게 시작하여 점점 강세와 빠르기가 커지도록 되어있다. 8번 합창은 반복되는 “Steiniget ihn 돌로 쳐 죽이시오”라는 외침을 특별히 불협화음의 어조로 부르고 있는데, 바로 앞의, 전개되는 드라마로부터 일시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사랑스러운 소프라노 아리아(7번 “예루살렘!”)에 의하여 강력히 대조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짜여 있다.

  제 1부의 두 번째 부분(10-16번)은 타르수스의 사울을 소개한다.

  11번의 위로하는 합창 뒤에 사울은 시편으로부터 편집된 텍스트에 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분노하는” 아리아(12번)를 부른다. 알토 레치타티브와 아리오소로 된 다마스쿠스로의 여행(13번)은 이 오라토리오의 영적인 중심부분 - 14번 그리스도의 발현(“Saul! Was verfolgst du mich?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이곳에 멘델스존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목사인 Julius Schubring에 의하면 작곡가는 이 장면을 “강력한 베이스소리”로 잡아낼 수 없어서 본래는 소프라노 솔로로 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너무 가늘어서 Schubring이 멘델스존에게 4부 합창을 권하자 들리는 바에 의하면 멘델스존이 대답하기를 “알겠어요. 그리고 권위 있는 종교 학자들이 아마도 나를 잘 잘라서 죽음으로부터 일어난 그 분을 부정한 뒤 보충하도록 시키겠지요.”라고 하였다 한다. 나중에 그는 이 부분을 다시 작업하여 목관과 금관의 반주를 동반한 여성 4부 합창으로 만들어 천상의 효과를 일으켰다.

  장엄한 합창 15번에 이어 코랄 “깨어나라”의 전주가 다시 나타난(16번, 이제는 텍스트와 함께) 후 사울의 다마스쿠스에서의 하나니아스와의 만남과 사울이 다시 앞을 보게 되는 것이 1부의 마지막 부분을 이룬다(17-22번).

  음악적인 주요점은 사울의 두 개의 아리아에 있는데 표현력 가득한 18번(“Gott, sei mir gnädig” 하느님, 저를 돌보시고)은 12번의 펜던트를 형성하고(둘 다 B단조이다), 20번(“Ich danke cir, Herr, mein Gott” 주 하느님 감사드리나이다)은 사울이 합창에 의해 답을 받는다. 22번에서 합창은 하느님의 숭고하고 헤아릴 수 없는 본질에 대한 경탄으로 돌아간다. 점점 빨라지는 빠르기의 짧은 이중 푸가가 1부의 종결을 짓는다(점점 빠르기는 물론 전주에서와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비평가들은 보통 성 바오로의 2부가 극적인 움직임이 부족하고 1부에 비하여 하위의 것이라고 판단한다. 확실히 2부는 1부의 발현 장면과 같은 극적인 장면이 없다.
  더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두 개의 이중창(25,31번)은 설교적이고 감상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특히 25번과 부드럽게 따라 나오는 합창 26번은 pastoral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군중 장면들(28,29,38번)은 1부에 나오는 군중 장면들에 비해서 힘과 충격이 덜하다(38번은 실제로 8번으로부터 자료를 빌려 쓰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멘델스존은 2부에 이 오라토리오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들 중에 일부를 마련하였다. 되풀이해서 그의 예술의 본질 속에 있는 종합성에 의해서 감명을 받는데 이것은 그 이전 시대의 음악들로부터의 모델들, 특히 헨델의 오라토리오와 바흐의 수난곡으로부터 드리워진 끊임없는 영감에 힘입었다. 눈부신 팡파레가 먼저 나오는 시작 합창(23번, “Der Erdkreis ist nun des Herrn” 온 세상이 주님의 것이로다)은 고도의 힘 있는 푸가(푸가 주제의 주 동기는 이름난 선조들을 모방하는데 :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의 마지막에 사용되었고 또 그 이전에 수많은 바로크 작곡가들에 의해 사용되었던, 소위 “주피터 동기”와 연관되어있다)를 형성한다.

  두 개의 이방인의 합창(33,35번)을 포함하여 어떤 합창들은 특별히 헨델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멘델스존의 어떤 동시대인의 표현으로 “고전주의 헬레니즘의 가장 미묘한 조각”으로 파악되어지는 직접 감동받기 쉬운 형식으로 나타나있다. 물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수많은 영향이 나타나있는데 때때로 너무나 분명하나(예를 들면 36번의 “Wir glauben all 우리는 믿나이다”에 기초한 코랄 푸가), 때로는 보다 현대적인 문맥을 형성한다(예를 들면 40번의 카바티네와 오블리가토 첼로 독주).

  이 오라토리오를 다루는 데 멘델스존은 분명히 음악적 역사결정론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성 바오로를 둘러싼 토론은 그 역사결정론의 본질에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네에게 있어서 그 결과는 바흐와 헨델에 대한 “노예적인 모방”이었을 뿐이었고 오토 얀에게는 성 바오로가 성 음악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진보”를 나타낸다. 그러나 작곡가의 이 오라토리오의 채용은 특히, 초기 사도들의 행적을 주제로 삼은 것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적합성을 요구한다. 18세기 계몽 시대의 저명한 철학자였던 Moses Mendelssohn의 손자인 Felix Mendelssohn으로 태어난 작곡가는 7살에 루터 교의 세례를 받았고 1847년 3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이 믿음을 견지했다.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의 창작과 영적인 깨어남과 자신의 발견에 대한 그 메시지는 작곡가의 가족사에 중요한 부분을 다시 찾게 하였다.